파비안 베르테
2023. 11. 8.

 

“고양이가 길을 잃어버렸대서….”

 

ⓒCM918385

 

마지막 완두콩 한 알

𝐅𝐚𝐛𝐢𝐚𝐧 𝐕𝐞𝐫𝐭𝐞

1st|슬리데린|1988.08.08.|146cm

포도나무|불사조의 깃털|13inch|탄성 있음

 

우유부단  어영부영  우당탕탕

 


웨이워트― 폭발 사태

비-마법사 출신으로 마법 사회의 사건·사고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다이애건앨리에서 읽은 예언자 일보 몇 줄이 아는바 전부. 마법 사회의 테러리스트?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짧게 공포로 몸을 떨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열한 살이라는 건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터트리는 테러리스트보다 귀 옆에서 불호령을 내리는 할아버지가 더 무서울 나이니까.


베르테
군인 출신의 엄한 할아버지와 마음씨가 상냥하지만 유약한 할머니와 셋이서 살고 있다. 부모님은 아주 어릴 때 이혼했다는데,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혼을 결사반대하던 할아버지가 제 자식마저 내쫓았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손주는 어떻게든 거둬 기른 모양이지만······. 그마저도 마음에 흡족하지는 못했다. 어릴 때부터 파비안이 보인 마법적 기질 때문이다. 몇 가지 사례를 기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느티나무 추락 사고
베르테 하우스에는 작은 정원과 정원에 비해 너무 큰 느티나무가 딸려 있었다. 네 살 무렵, 그네를 타고 나무에까지 기어올랐던 파비안은 불행히도-그리고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하필 퇴근한 할아버지가 유일한 목격자가 되고 말았는데, 다행히도-그리고 매우 놀랍게도- 파비안은 팔다리 어디 하나 다치지 않았다. 파비안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리 태평하게 넘길 수 없었다. 바닥에 닿기 직전 시간이 멈춘 것처럼 허공에 떠 있던 손자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나무에는 왜 기어 올라갔냐는 호통에 파비안은 이렇게 대답했다. “고양이가 거기가 참 좋은 자리랬어요. 올라와 보라길래······.” 고양이 핑계를 대며 어른을 놀린다고 더 혼난 것은 덤이다.

 


실종(X) 가출(O) 사건
일곱 살 무렵, 파비안은 불현듯 이틀이나 실종된 적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아이를 찾아 나섰지만, 온 골목을 샅샅이 뒤져도 머리카락 한 올을 찾아낼 수 없었다. 경찰 신고 결과, CCTV에는 파비안이 현관을 나서는 장면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았다. 베르테 하우스에 뒷문은 없었으므로 동네 사람들은 아이가 집안 벽장이나 다락방 따위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파비안은 타이밍도 좋게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 기절초풍한 어른들이 어디에 있었냐고 묻자 “덤보 씨를 보러······.”라는 황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참고로 덤보 씨는 옆 동네에 사는 고양이다.)

어떻게 집 밖에 나간 거지? 창문으로 나갔나? 너무 작아서 CCTV에 안 찍혔나? 어른들은 어리둥절한 채로 각자 제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훌쩍였고, 할아버지만은 심상치 않은 얼굴로 손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길고양이 집회
파비안은 또래 아이들보다 고양이를 곧잘 따라다녔다. 길고양이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거나, 이웃집 아저씨의 고양이를 보러 온종일 놀러 가곤 했다. 뒷골목 쓰레기장에서 고양이 십수 마리와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기도 했고, 주차장 구석진 곳이나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서 고양이들과 뒹굴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 꼴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파비안은 들킬 때마다 혼쭐이 났고, 할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점점 더 교묘하게 숨어다니는 법을 터득했다.

왜 자꾸 고양이를 쫓아다니냐고 물을 때면 파비안은 고양이들과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마치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고양이들의 사정을 들려주며! 할아버지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는 제 손자가 단단히 미쳤거나, 악마에게 홀렸다고, 이게 다 파비안이 어릴 적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검은 고양이 때문이라고 믿었다.


호그와트 입학장
을 받을 때까지도 그 믿음은 견고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마법사라는 사실에 대단히 충격을 받았는데, 마법사라는 세 글자가 늙은 그의 귀에는 악마 숭배자라고 들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호그와트 입학을 목전에 둔 지난 주말까지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가족을 데리고 성당을 찾았다. 아멘. 물론 소용은 없었고, 파비안은 성당에 사는 새 고양이 친구를 사귀었을 뿐이다.


애니마구스
선천적으로 타고난 애니마구스다. 종은 고양이, 정확히는 고양이 태비. 여섯 살 가을, 자신을 잡으러 온 할아버지한테서 도망치려다가 엉겁결에 변신한 것이 첫 자각이었다. 본인은 꽤 능숙하게 변신했다가 돌아오는 모양이지만,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할머니에게도 비밀. 무서운 할아버지에게는 죽을 때까지 비밀. 아는 건 대장 고양이 캡틴뿐이다. 


파비안 베르테
품이 큰 슬리데린 망토, 매듭이 엉망인 넥타이(아직도 묶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헐렁헐렁해서 소매가 흘러내리는 셔츠는 반바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드러난 무릎에도 얼기설기 붙인 반창고나 옅은 상처가 가득하다. 할아버지가 고른 검은 구두는 사립 학교 학생이 신을 법한 단정한 디자인이지만 리본 모양이 짝짝이다. 얼굴이나 손에는 자잘한 생채기가 잔뜩 나 있다. 고양이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모양.

어릴 때부터 고양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일정 부분 같은 종이기 때문이려나. 말꼬리를 흐리는 버릇이 있다. 고양이보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한다.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성질이 느릿느릿하다 보니 또래 아이들과 잘 섞이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사람은 곧잘 따르고 쉽게 마음을 준다.

슬리데린 기숙사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둡고 좁은 곳이 마음 편하니까. 야망이라는 게 있긴 해? 싶을 정도로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녀석이지만, 나름의 포부는 있다. 졸업하면, 그래서 어른이 되면, 거대한 고양이 ‘카트시’를 찾아 나설 것이다. 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마법사라니 제법 그럴싸하지 않은가. 사람이 없는, 고양이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비-마법사 출신이지만, 본인이 마법사라는 건 꽤 일찍 알고 있었다. 아마도 막 말을 배우던 때였던 것 같다. 창밖을 지나가던 검은 고양이가 알려줬다. 할아버지의 예감이 아주 약간이나마 들어맞았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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